1년에 300일은 강풍, 한 달 동안 지속되는 안개, 가게라고는 하나도 없어서 대한민국 화폐가 통용되지 않는 이곳에 살고 있으면, 이곳이 대한민국 영토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해외지만 해외가 아닌 이곳. 이곳에도 원어민교사가 있다.

 

현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 덕에 우리 섬에도 2학기에 원어민 선생님이 생겼다. 사실은 중학교 원어민 선생님이지만 중학교 수업만으로는 수업일수가 안 나와서 본교에서 수업하고 그래도 부족해서 분교에 까지 와서 수업을 하는 순회 원어민 교사다. 그리고 우리분교에는 한 학기에 총 2번 방문하여 아이들을 가르친다.



2학기의 첫날

큰 섬으로 향하는 배에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원어민이 탑승하였다. 그의 이국적인 모습이 낯설었지만 배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근함을 느꼈다.

그도 사람이었고, 결국 위생봉투 한 뚝배기 하셨다. 파도 맛이 억수록 부드럽네예~

외국인에게도 한줌의 자비도 없는 파도님은 원어민에게도 호된 신고식을 치러주었다.

그리고 몇 달 후 우리 분교에 원어민선생님이 처음으로 방문하였다. 그 원어민 선생님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중학교 원어민 선생님이기 때문에 중학교 교장샘, 중학교 영어샘, 기타 등등샘을 끼고 우리 섬에 왔다. 처음 오신날에는 주변 분들이 워낙 많아서 원어민과 제대로 대화를 하지 못했다.



두 번째 방문 날

계속 날씨가 좋다가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은 날씨가 지옥처럼 안 좋았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 섬에 도착. 이번에는 원어민 혼자 와서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나는 다짜고짜 수줍은 Hi를 날리고 대화의 물고를 텄다.

필자는 대한민국 아저씨의 영혼으로 빙의해서 철저한 호구조사를 수행하였다.

원어민의 나이는 이십대 후반, 집은 미국, 대학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다니고 있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한국사람인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가이드하고 있을 때 만나 현재 3년 동안 사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 대학원생이고 대학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다고 한다.


전혀 모르고 지나가도 될 영양가 제로인 돼지껍데기 같은 신상정보를 밀도 있고 농밀하게 조사한 후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갔다.

왜 이렇게 먼 섬까지 왔느냐?

- 나의 꿈은 해양동물 관리인이 되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해양 동식물 관련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이곳에서 연구 겸 해서 왔다.


이 섬에 오니깐 좋은 점이 무엇이더냐?

(원어민의 어투를 그대로 옮기겠다. 독자들은 한국어를 떠듬떠듬 읽어주시면 더욱 현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여기 오기 전, 나, 서울 살았어요, 서울 사람들 영어로 말 걸어요.
여기 오니깐 영어 쓰는 사람 한명도 없어요. 너무 좋아요.

영어가 싫어서 섬에 들어온 원주민..... 원어민.
(아마도 유아수준의 간단한 영어로만 대화하니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차라리 영어 없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 나으리라...)

하지만 필자는 한줌 눈치도 없이 유아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며 남은 정보를 캐내는 데 열중했다.

온라인 게임 중 좋아하는 것이 있냐? 

- 카운트 스트라이커(총 쏘는 게임)를 좋아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스페셜 포스나 서든어택은 어떠냐?

- 너무 하고 싶다. 하지만 할 수가 없다.

왜 못하냐고 물으니...

- ID가 없다.

아이디야 만들면 되지 않는가?

- 주민등록번호가 없어요. ㅠㅠ

주민번호가 없어서 게임을 못하는 씁쓸한 원어민.

원어민이 수업을 마치자 그를 항구까지 데려다 주었다. 원어민을 태운 쪽배는 넘실대는 파도에 휩쓸려 본도로 떠내려갔다.


그리고 12월 달의 주말, 우연히 배에서 만나 인사를 했다.

겉 치례로 지난 주말은 어떻게 보냈냐고 물어보니깐

서울가서 여친이랑 재밌게 놀았다고 염장을 질렀다.



반대로 원어민이 크리스마스 때는 나한테 뭐할거냐고 물었다.


...


-.-;;; 솔로에게 지옥같은 크리스마스!!!!!

나는 I have no plan. 하며 고개를 숙이고 뒷목을 잡았다.

그는 연민의 눈빛으로 That`s too bad.라고 하며 나와 눈을 피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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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래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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