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공소시효
가 지나서 이제야 조심스럽게 꺼내는 이야기다



 

한명의 죽음은 비극이요. 백만명의 죽음은 통계다. 
                                                                                     - 조제프 스탈린 -


 

이제는 재수생을 더 많이 양산하는 임용고시, 재수생이 많아진다고 해서 그들의 슬픔이 보편화되고 가벼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개개인의 구슬픈 사연이야 형형색색이고, 그 슬픔 또한 한 굽이굽이가 눈물이 난다. 전날 잠을 한숨도 못자서 시험 보는 내내 머리가 띵 했다거나, 옆에 사람의 스멜 혹은 사운드에 방해를 받아 제 실력을 발휘 못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등등

 

필자는 그런 사연보다는 좀 더 극적인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그때 당시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코로 물을 들여 마신듯 머리가 깨질듯 아프고

빨대로 숨을 들이 쉬는 것처럼 숨이 차며

자신만의 공간의 회오리에 갇혀 정신 줄을 놓고만 싶어진다고 고백했다.

 

한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앞의 사람을 똑바로 처다 보지 못했다. 그리고 뒷짐을 지고 혀를 끌끌 차며 먼 산을 바라보게 만든 씁쓸한 이야기...





그 이야기를 시작하련다.


필자의 학교는 서해남부 먼 바다로 차라리 중국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헌데 같이 근무하시는 형님들은 전주, 부산, 경주, 마산 등 까마득히 먼 곳을 고향으로 두셨다. 그것도 6명이나..... 그리고 나와 같이 근무하는 형도 그중 하나였다. 교통이 발달하고 KTX다 뭐다 해도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하루 종일 가도 갈 수 없는 곳이 존재한다는 걸 이 형님들을 통해 알았다.


그렇기에 매주 집에 가는 것은 꿈도 못 꾸고, 그나마 쉴토의 꿀 같은 휴일도 반납하고 그냥 섬에 계시는 지옥 같은 생활을 하시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고향에서는 그분들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가족, 애인,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나이는 유유자적한 섬생활을 향유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오히려 그들의 나이는 꿈과 도전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그들은 고향상륙을 위한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한편 2008년 처음으로 도입된 3단계 시험...

이것이 이런 참사를 불러올지는 교육부 장관도 몰랐으리....


이리하여 일 년간 틈틈이 공부하여 드디어 결전의 1차 시험을 치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시험을 치루고 온 형의 표정을 보았다. ‘생각보다 시험을 잘 본 것 같아.’ 라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세어나는 그날의 웃음을 나는 잊을 수 가 없다. 불끈 쥔 주먹, 형은 집으로 한걸음 다가간 느낌이었다.


의욕 사기 200% 충천!

순풍을 단 배처럼 여세를 몰아 질풍 같은 기세로 2차 시험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언제나 불운은 한마디 경고 없이 찾아와 우리를 산산조각 내버린다.

 


시험보기 4일전...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한동안 얌전했던 저 바다의 파도가 기지개를 펴며 서서히 출렁이기 시작했다.

“형, 날씨가 안 좋은데요.”

“어떻게든 되겠지....”

 


시험보기 3일전

“형... 날씨가....”

“뭐 이러다가 말겠지.”

 


시험보기 2일전

“형 큰일인데요.”

“...”

형은 기상청 직원을 방불케 할 만큼 날씨에 촉각을 기울이며, 전화기와 기상청 홈페이지를 붙들고 있었다.

 

시험보기 1일전

바깥에는 온 세상을 집어 삼킬 것 같은 5m짜리 파도가 바다에 떠 있는 배를 희롱하고 있었다.

이 곳 저 곳 수소문하며 나갈 방법을 강구했으나.... 형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바람 빠진 홍보인형처럼 축 쳐져버렸다.

그리고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가 이불속에 드러누웠다.

그 모습은 마치 서서히 조여 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타이타닉의 노부부 같았다.






 

그리고 시험 보는 날 당일

4일간의 지옥 같은 바람과 파도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고요하고 얌전한 온순한 바다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쨍쨍 내리쬐는 햇빛은 그날의 기억을 더욱 참혹하게 만들었다.


방문을 빼꼼하게 열어 형을 보니 어제 누운 그자세 그대로 밥도 물도 먹지 않은 채 누워있었다.

슬픔의 도가 넘치고 넘쳐 시름하고 있는 사람을 위로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느 한마디도 꺼내기 힘들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결국 한마디도 건내지 못한 채 형의 등만 바라보다 방을 빠져 나왔다.

그날 결국 형을 비롯한 5명의 형님들은 시험장에 갈 수 없었다.

 

 

 

 

그리고 뒤늦게 안 충격적인 사실 2가지.

1. 그런 4일간의 지옥같은 상황에서도 화물선은 떴다는 것이다. 비록 5시간이 걸리지만...

2. 작년에도 시험 날 주의보가 떠서 시험장에 갈 수 없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집이 부산인데도 시험을 보지 않았던 경력 1.5년차의 형... 임용시험을 준비하지 않는 이유를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곳은 시험 볼 기회조차 주지 않는 너무 먼 곳.

주체할 수 없는 불같은 열정에도 찬물을 끼얹는 곳.

 

 


식음을 전폐하고 폐인이 된 형.ㅠ 

출장 나간 혼을 챙기고 처음 꺼낸 한마디는.....

 

 



 “괜히 공부 했어 ㅠㅠㅠ. 괜히 공부 했어 ㅠㅠㅠ.”

 

 


하아.... 그리고 2009년

이런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피폐한 몸과 정신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는 오히려 오기가 발동해서 자신의 불운의 끝을 실험해 보고 싶은 맘이 생겨버렸다.

오냐 ~ 올해도 배가 뜬가 안 뜬가 두고 보자.

그리고 올해도 시험접수를 했다.

하지만 그런 기구한 일을 겪고 어찌 펜이 손에 잡힐까?

펜만 잡으면 그날의 지옥같은 기억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내심 시험 날 주의보가 뜨지는 않을까 기대하던 차에...

세상은 역시 흥미로웠다.

바다는 고요했고, 배는 떴다. 하지만 형의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ㅠ

결국 고생하는 임고생들을 위해 올해는 자발적으로 2차 시험을 응시하러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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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하실 때 입니다.

Posted by 래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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