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책을 펴고 책상 앞에서 공부하는 흉내를 내보려고 해요.
공부를 한 티끌만 해도 당장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이 너무너무 하기 싫어도
책상 앞에서 앉아주는 것은 임고생의 기본 예의에요.
어어어..헌데 오늘 공부가 좀 될 것 같아요. ^-^
집중 좀 하려는 차에....
거실에서 “깔깔” 웃는 엄마의 사자후가 들려요.
방문을 열고나가 보니
엄마가 쇼파에 와신상의 모습으로 깔깔대고 있어요.
엄마는 가끔씩 티비에게 말을 걸기도 해요.
나는 미간에 주름을 확 잡고 엄마를 쏘아보아요.
엄마는 이미 티비 속 등장인물 중 하나이고
다른 세계를 공기를 마시고 있는 듯 나의 독사 같은 눈빛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어요.
나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기차화통을 삶아먹는 듯한 “엄마”라는 소리를 내질러요.
이제야 엄마는 움찔하면서 리모콘으로 소리를 줄이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요.
그래요 나는 엄마의 상전이에요.
그리고 임고생이라는 벼슬을 하고 있어요.
유세도 보통 유세를 떠는 것이 아니에요.
엄마가 시끄럽게 해서 공부를 못한다고 괜한 핑계를 대요.
다시 방으로 들어와요.
아씌... 이제는 공부가 손에 안잡혀요.
머릿속에는 딱 게임 한판만 하고 공부하면 기가 막히게 잘될 것 같아요.
정말 딱 한판만 하기로 결심하고 컴퓨터틀 켜요.
하지만 엄마에게 노는 모습 보이기가 미안해서
컴퓨터 주변에 교재를 깔고 펜하나를 올려놓아요.
그리고 아무 인강이나 하나 틀어놓고 게임에 들어가요.
이미 나의 귀는 사냥개이상의 예민함으로 곤두서있어서
1차 경고음인 엄마의 발소리
2차 경고음인 방문 고리 돌아가는 소리에
0.15초 만에 alt+tap키를 작렬할 수 있어요.
마침 엄마의 발소리가 들려요
훗. - _-ㅋㅋ
이미 고3때 ebs듣는 척하면서 길러왔던 스킬이기에 기술 점수 만점에
지금껏 인강을 들었던 것 같은 연기력은 일품, 아니 명품이에요.
엄마는 한시도 쉬지 않고 공부하는 척하는 나의 모습에 감동하며, 간식 아이템을 전달하고 퇴장해요.
나는 부모님에게 노는 모습안보였기에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해요.
안심하고 과일하나 찍어먹으면서 게임에 몰입해요.
하지만 “아들아, 리모컨 혹시 두고 가지 않았냐?”라는 말과 함께 엄마가 내방에 벌컥 들어와요.
아뿔사... 엄마의 시도때도 없는 건망증에 허를 찔렸어요.
내가 만든 엄마의 유서 깊은 진한 주름을 더욱더 구긴 채로 도끼눈을 하고 나를 노려봐요.
“너 이때까지 공부안하고 게임했냐?” 라고 해요.
속으로는 ‘아씨 망했다.’ 라고 생각이 들지만
표정은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난생 처음으로 게임하다 걸린 것처럼 울분을 토해요.
“나도 스트레스 풀어야 할 것 아니냐? ” 라고 항변해요.
방귀 낀 놈이 성질낸다던데 그 꼴이에요.
엄마는 “요즘 더 합격하기 힘들다던데 이렇게 해서 합격은 하겠냐고” 나의 신경을 박박 긁어요.
“내 일이니깐 엄마는 좀 나 좀 간섭하지 말아요.” 라고 꿋꿋하게 맞서 싸워요.
엄마는 최후의 항변으로
“니가 임용고시 합격만 해봐라. 이 애미가 다시는 간섭 안한다”는 공약을 내세워요.
하지만 나는 잘 알아요.
엄마는 내가 장가가고 애 낳고 늙어 꼬부랑 할아버지 될 때까지
내 인생에 영원한 훈수쟁이라는 걸요.
하지만 아직 엄마가 주는 용돈으로 생계를 연명하기에 엄마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아 참아요.
엄마랑 한바탕 전쟁을 치루고 얼마 후
아빠가 귀가하셨어요
아빠는 주변 분들에게 우리 집에 교사가 생겼다고 벌써 소문을 다 내셨어요.
시험보기도 전인데 나는 이미 정교사에요.
아빠는 아직도 졸업만하면 교사가 되는 줄로 알고 계셔요.
시대를 역행하는 사고를 지닌 아빠가 미워요.
그리고 이미 아버지께서는 20세기에 샀던 헌차를 떠나보내시고
2010년 최신형 차로 바꾸실 계획을 세우셨어요.
미래의 있을지 모를 나의 월급은 자동차 할부를 메우는 걸로 되어버렸어요.
아빠는 “내년에 돈 버는 네가 자랑스럽다”라는 결정타를 날리고 내 방을 유유히 떠나요.
필자는 타지에서 부모님과 떨어져서 4년간 대학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4년 장학금 면제라는 불명예 덕에 향토장학금(용돈)으로만 살림을 꾸려나가야 했다.
그러기에 나의 대학생활 칭호는
전화기 속 나라의 빚쟁이 아들이었다.
생전 집에도 잘 안가고 간혹 전화 걸었다하면, 엄마 나 돈좀 ㅠ_ㅠ
그래서 엄마가 임용합격전에 가장 무서웠던 것은
카드 명세서와 세금 고지서 그리고 아들의 전화였다고 고백하셨다.
이렇게 온갖 불효를 일삼았던 나였지만
이제는 엄마가 차려주신 밥 한끼도 매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다.
여기까지 필자의 고해성사를 마치고
오늘의 주제; 엄마와 자식 간의 갈등과 마찰, 그 비극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에 대하여 알아보자.
[인기 웹툰] 서나래 님의 낢의 사는 이야기 그림 인용
가장 큰 원인은 엄마는 자식을 또 다른 자신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우리를 낳을 때, 피와 살을 나누었다.
자신의 몸의 일부를 떼어 만들었으니,
비록 몸은 분리 되었을지언정
엄마와 자식을 독립된 두 인격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본다.
키운정, 미운정, 고운정
인간은 정에 약하다. 더욱이 여자는 정에 더 약하다.
그리고 남자들은 삶을 살면서 육아 부분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아이들은 엄마의 손에 자란다.
아이는 당연히 죽으나 사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엄마를 찾을 수밖에 없다.
자신만 바라보는 이 미약한 존재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줄 수밖에 없다.
어쨌든 엄마는 항상 자식과 본인을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식을 위한 돈과 희생, 노력이 아깝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자신의 자아실현이 방편으로 여긴다.
하지만 자식들은 엄마와 나는 분리된 독립적 인격이며,
반드시 엄마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다.
엄마는 자식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에
인생을 덜 살아본 자식에게 가르침을 준다.
하지만 자식은 이것을 간섭 혹은 훈수라고 생각한다.
같은 것을 보고도 엄마와 자식은 판이하게 다르게 생각하기에 우리는 이렇게 엄마와 다투게 된다.
우리들의 엄마는 자식이라는 존재를 낳은 업보로
한평생을
희생을 밥으로
헌신을 반찬삼아
하루하루 자식들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제서야 감사함을 느낀다.
엄마가 주는 재물이나 희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소중하고 가슴 뛰게 한다는 것을.....
글쓴이가 안쓰러워 한 줄씩 써주는 댓글은
변비치료와 임용고시 합격에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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