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한 달에 한 번 집에 가는 섬교사입니다. 매번 뭍에 나가면 달이 바꿔있네요 ㅠ


 연달아 코 끝이 시큰거리는 궁상맞은 글만 올라오니 섬은 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오늘은 섬의 목가적인 낭만에 대해서 써보려고 한다.

 우리 섬은 정규선이 없어서 사람 손이 거의 닫지 않아 DMZ에 버금가는 원시 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산과 바다에는 자연산 특산물들이 곳곳에 서식하고 있고, 약간의 수고를 하면 자연산 식품들을 맛 볼 수 있다.
 물론 필자는 수렵, 사냥, 채취는 온라인 게임에서만 해본 생초보유져였다. 하지만 이 섬의
만렙유저들(마을 주민)의 친절한 퀘스트 소개와 쩔(도움)로 모든 사냥터를 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안에 숨어있는 원시적*원초적 재능도 발견하게 되었다.

 어쨌든 섬에서 흥미와 적성을 발견한 필자와 분교장샘은 온 섬을 누볐고, 각고의 노력 끝에 일년만에 계절별 섬의 특산물과 서식지를 파악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와 어께를 나란히 할 우리섬 맛지도를 편찬하게 되었다.

 3월에는 봄나물과 숭어
 4월에는 두릅
 5월 곰취(취나물과), 성게알
 6월 산딸기
 7월 미역
 9월 다시마
 10월 우럭
 11월 쨋밤
 12월 갑오징어


게다가 남쪽 섬이라 따뜻해서 그런지 봄나물이 2모작으로 자란다. 그래서 가을에도 채취가 가능하지만 봄처럼 맛있지는 않다. 9월에는 멸치 떼들이 몰려와 어종와 어획량이 급증한다. 덕분에 여러가지 어류를 맛볼 수 있다.

 1년간은 본격적인 사냥을 위한 초석을 성실히 준비했다면, 2년 차는 본격적인 수확의 해였다. 이제는 만렙유져들의 도움 없이도 자력으로 사냥을 할 수 있는 중수가 되었다. 물론 만렙유져들의 스피디한 사냥 속도와 세련되고 노련한 사냥법을 익히지 못했지만, 주요 리젠장소(많이 자라는 곳) 및 레어아이템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냉랭하고 앙상했던 겨울들판에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날 쯤에 우리는 호미와 썬캡, 장갑, 장화를 신고(완전군장 Full Set) 산을 오른다. 이시기에는 쑥, 달래, 씀바귀, 엉겅퀴, 냉이가 제철이다. 처음에는 무엇이 똥인지 된장인지  무엇이 나물이고 잡풀인지 구분을 못해 아무것이나 다 캐냈지만, 이제는 나물만 쏙쏙 골라 캔다. 우리의 나물 채취하는 모습은 이렇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매서운 눈빛으로 봄나물을 스캔하고 신속하게 채취의 일련과정을 수행한다. 그리고 한줌 자비도 없이 봄나물을 봉투안으로 쓸어 담는다.

 분교장샘과 나는 마트에서 주는 큰 봉투에 나물을 한가득 캐서, 득의양양하게 집으로 향한다. 서로의 향상된 채취능력과 오늘의 수확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있을 쯤, 앞에 이웃집 할머니께서는 쌀포대 2가마니에 나물을 가득 넣고 그것을 지게에 짊어지고 묵묵하게 내려가신다. 우리가 일반커피라면 할머니는 T.O.P.였다.

 이렇게 운동겸 해서 봄나물을 캐는데 분교장샘은 중년여성이라는 계급에 맞게 좋은 것은 이웃과 나눠먹어야 한다는 사명을 지고 계신다. 그래서 필자가 캔 것들을 다드려도 모자란다. 그래서 2시간을 예상한 나물채취는 언제나 4~5시간이 되곤 한다. 패턴은 이렇다 필자가 가자고 사정을 해도 노래방 서비스 시간이 추가되듯이 30분 연장, 20분 연장, 라스파이널 15분 연장, 1분남겨놓고 새 노래를 부르듯이 끊임없이 앉아서 나물을 캐신다. 언제나 입으로만 가고 계신다.ㅠ
 덕분에 필자는 우는 소리와 너스레만 늘어났다. 분교장샘 여기 더 있다간 죽을 것 같아요. 가스불 켜놓고 온것 같아요. 우리 갯강구 플랑크톤 넣어 줄 시간이에요. 집에 애가 배고파서 울고 있어요.(?) 등등 갈수록 변명은 화려해졌다. 그리고 그 우는소리와 너스레는 한편의 시조로 승화하게 되었으니...


이름하여 나물 별곡

지금 함께 감상해 보자. 

나물별곡(나물別曲)

 

 

어서가세 어서가세

가자한지 예전인데

해떨어져 어둑어둑

어서가세 어서가세

 

 

가지마오 가지마오

입으로는 내려가자

발걸음은 숲속으로

가지마오 가지마오

 

 

일어나오 일어나오

가자면서 어찌하여

호미들고 앉아있소

일어나오 일어나오

 

 

나지마라 나지마라

집에가는 길가에는

달래냉이 봄나물은

나지마라 나지마라

 

 

 

 작품 해설

 

1. 갈래 : 평시조

2. 운율 : 4。4조, 4음보

3. 성격 : 체념적, 애조적

4. 주제 : 해가 질때까지 나물캐는 아낙네를 나무라며 집에 가자고 보챔.

5. 형식 상의 특징

   :  재미보다는 4글자에 집착한 조잡한 작품.

6. 내용의 특징

   : 한 아낙네의 봄나물 채취와 섭취에 대한 강렬한 욕망

  다른 아낙네의 집에 가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이 대비.



 

[직접 캔 달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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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래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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