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 앞에서 책한 권 골라 옆구리에 끼고, 가까운 커피점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손에 들고가며 한 껏 차도남 기분을 내보지만 얼룩덜룩한 전투복에 군화는 씁쓸하기만 하다.

 

6개월만에 가는 집...

 

한숨 돌릴 틈없이  쉴새 없이 지나가는 군생활을 잠시 뒤로 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오는 이 순간만해도 얼떨떨하기 그지없다. 혹시나 6개월간 아들 한번 보지 못한 어머니께서 그 사이에 나에게 알리지 않고 집을 이사했다던지, 나의 낯선 얼굴을 보고 현관문을 안열어주실까? 하는 고민과 조심스러움 속에 우두커니 현관문 앞에 서 있었고 힘껏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리자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 나오신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 품안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내가 집에 돌아왔고 바깥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였구나하며 안심할 수 있었다.

 

 

군생활 10개월......... 그리고 1차 휴가

 

 

과연 현재의 내게 레알(real)은 무엇일까??

 

 

 

머쉰...

 

그것도 철저히 감정을 배제한 일만하는 머쉰

 

 

 

나는 10개월 동안 그 좋아하던 일기쓰기 글쓰기 하나 못하고

 

일하고 자고 일하고 자는 중대 인사계원.

 

 

나는 당당히 말 할 수 있다.

 

컴퓨터 옆 캐비넷에 한쪽을 가득 채운 서류철들은 자네들이 흔하게 생각하는 CTRL+C CTRL+V해서 마구마구 찍어낸 서류들이 아니란 말이야 일당2600원짜리 일병이 한땀한땀 자판을 쳐서 만들어낸 가내수공업 서류들이야

 

 

그뿐만이 아니지, 손님 올때마다, 선임들 한명씩 지나갈때마다, 순식간에 말아서 갖다 바친 커피만 석달만에 천잔이 넘는 커피자판기와 경쟁하는 바리스타라고...

 

그렇게 철저하게 감정없는 머쉰처럼 일만하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티비를 보았다.

 

REAL IU의 뮤비 좋은 날이 흘러 나왔고

 

 

IU의 오빠 덮치는 백허그에 마음을 송두리째 뺏겨 버렸고,

 

솔로 3호봉 동안 잊고 지냈던 연애하고 싶은 감정이 복바쳐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현빈의 거품키스에 개거품 물고 부러움에 몸서리 치며,

 

힘겨운 연애감정 재활치료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사무치게 휴가를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임에게 휴가가고 싶다고 말을 했다. 

 

 

 

뭐~ 휴가?? 휴~~~우~~가???

어디서 건방지게 말이야 휴가를 나가려고 그래?
 일병이 휴가 가는 자체가 문제야 문제
나 때는 말이야 휴가는 커녕 휴식도 없었어.

그냥 소처럼 일만 하다가 지쳐서 바닥에 뒹굴면 그게 휴식이지,

그래서 못 일어나고 가망이 없다 싶어서 군병원으로 후송보내면 그게 휴가고 그랬지예~

어디서 건방지게 쉴 거 다 쉬고, 휴가갈 것 다가면 삽질은 누가 해???  삽질은!!!

 

이렇게 질색을 하던 선임.

 

하지만 나의 이상행동...

 

000상병님 쾌변을 했더니 목구멍이 목캔디 한 듯이 상쾌해요.

 

양치질을 하다가 거품키스 흉내내기

 

접시 물에 커피타기

 

등의 기행을 보이니 휴가를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나는 휴가를 가기 위해 선임 자리에 아기가 꼬까신 벗어 놓듯 전투화를 벗어 놓고, 꾸깃꾸깃한 전투복을 슬며시 올려놓고 자고 일어나보니 우렁각시같은 선임들이 번쩍번쩍 전투화를 닦아 놓았고, 전투복이 베일 것 같이 선이 잡혀있었다. 

 

나의 휴가를 위해 한껏 고생한 선임들에게 코가 땅에 닿아 발가락으로 코팔 수 있을 정도로 굽혀 큰절을 하고 위병소를 나와 이렇게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한번 한껏 차도남 흉내를 내며 문자를 쓰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통신보안 일병 000입니다.

 







여보세요가 낯선 남자...

 

나의 레알(REAL)은 바로 그냥 군인....;

 

나는 결심했다. 헛생각 말고


2011년 나는 나의 레알을 위해 

 

과도한 업무에 내가 지쳐쓰러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고

 

선임들과 보급관, 중대장이 나를 비난하고 헐뜯어도

 

그들을 품에 끌어안고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그전에 남은 휴가 9일 동안 미친듯이 놀아야지 ㅎㅎ



오랜만이라고 추천 안해주시면 섭해요 ~
Posted by 래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