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을 자취했지만, 아직도 실과 조리 실습시간에 라면스프를 넣는 요리꽝 교사입니다.
2008년 8월 31일
이날은 2학기 시작 하루 전날이다.
새로운 2학기
학부모님들과 화합의 장을 이루고자 조촐한 파티를 위한 삼겹살을 준비했다. 섬에서는 바나나와 돼지고기가 대접받는다. 섬에서 회는 계란프라이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오해가 없을 듯싶다. 학부모님들과 아이들 모두 함께 먹을 것이라 양이 좀 많아서 큰 아이스박스로 한상자가 나왔다.
한편 다시 섬으로 가져가야할 옷도 산더미였다. 한 여름에도 자주 보일러를 틀어줘야 할 정도로 습한 섬에 옷을 두고 간다는 것은 이 옷들을 걸레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를 제외하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또한 섬에는 조그만 구멍가게도 없기에 2주간의 식량을 한꺼번에 챙겨야 했다.
결국 나의 짐은 등에 메는 가방, 어께에 메는 가방, 28인치 캐리어가방(어린이 두 명 들어갈 정도의 크기), 삼겹살 아이스박스 총 4개를 들쳐 업고, 싸메고 해서 간신히 본섬에 도착했다.(필자는 여기서 배를 한 번 더 갈아 타야 한다.)
배에 행여나 짐을 놓고 내릴까봐 정수기 같은 깐깐함으로 모든 짐을 챙겨 배에서 내렸다.
일단 절반이상 왔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간만에 보는 분교장샘과 형님샘이 반가워서 신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는데,
2분정도나 이야기 하고 있었을까??
무언가 허전하였다. 짐이 하나 없어진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가장 큰 짐 캐리어가방이 사라졌다...!!!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ㅠ
그 짧은 시간에 가방을 잃어버린 것이다.
주변 관광객들을 낱낱이 살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나를 덮쳤다.
그 무거운 짐을 개고생하며 섬까지 가지고 와서 잃어버린 것이다.
도대체 며칠 관광하다 갈 사람이 28인치 캐리어가방을 왜 가져갔을까?
그 가방에는 옷가지와 이주일치 식량이 들어있었다.
그걸 몽땅 다 잃어버린 것이다.
힘이 빠지면서 미친 너털웃음이 세어 나왔다.
뭔가 심상치 않은 2학기의 출발이었다.
어쨌든 생이별하게 된 캐리어가방을 뒤로 한 채 우리 섬에 왔다.
방학 한 달간 잊고 지냈던 급경사가 나를 반기었다.
낑낑대면서 짐(다른사람들 짐과 학교물건)을 옮겼다.
개운하게 땀으로 샤워했다.
비로소 '다시 섬으로 왔구나!'가 느껴졌다 ㅠ
관사로 들어와서 짐정리를 했다.
짐정리... 딱히 머 할 것도 없었다.
캐리어 가방을 잃어버렸으니, 마음의 정리가 오히려 맞는 표현이겠다.
그리고 배가 고파서 밥을 먹었다. 포만감 덕에 가방상실에 대한 쓰라림이 좀 가신듯하다.
학교로 갔다. 헌데.... 인터넷이 되지 않는다.
후아.......
다시 캐리어 생각이 떠오른다. 할일이 없었기에 티비를 보러갔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늘어져 있어도 티비가 재미가 없었다. 차라리 잠이나 자야겠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빨을 닦으러 갔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안 나온다.
우리섬 전체가 지금 물이 안 나온다.
상수관 어딘가가 막혀서 며칠째 물이 안 나온다.
하아.... 아까 오르막길 오르면서 땀에 젖은 티가 끈적끈적하다.ㅠㅠ
하지만 갈아입을 옷은 없다.
아니, 딱 하나 있구나!
옷걸이에 걸려있는 비옷 한 벌
그것도 속이 다 비치는 투명한 비옷
그리고 1주일 후
나의 가방은 경찰서에 인도되어 나의 품으로 돌아왔다.
캐리어 가방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버선발로 마중을 갔다.
그리고 그 안에 갇혀서 나를 애타게 찾는 음식들을 황급히 꺼내었다.
하지만 이미 싸늘하게 식어 쉬어버려 주검이 된 나의 음식들... ㅠ
혹시나 그들에게 회생의 기미가 있는지 낱낱이 살폈지만 한줄기 희망도 없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그것들을 부둥켜안고 오열하였다.
내 다시는 너희들을 자연상태에서 부패하게 두지 않으리라 굳쎄게 다짐하는 날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의 식단은 한층 더 인스턴트 화 되었고...
통조림, 라면, 3분 카레, 오뚜기 즉석 국거리, 김, 김치, 냉동식품으로 굳어졌다.
이것들을 꾸준하게 섭취한 나는 이제 죽어서 땅에 묻혀도 아마 썩지 않을 듯싶다.
보너스) 인스턴트 곰탕 레시피 공개
오뚜기 곰탕(국물만 있음)+장조림 통조림 -> 건더기 곰탕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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