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섬탐험

진절나게 추운 겨울

래뽀 2010. 1. 18. 19:16


※ 한 겨울에 난방없이 1주일을 살았던 때에 썼던 일기입니다.


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나의 곁에 찾아오곤 한다.

이번의 불행은 보일러에 기름이 떨어진 것이다.

20년 묵은 관사는 외풍에 관대하여

바깥공기의 온도를 가늠할 수 있을 만큼 통풍이 잘되지만,

희미한 방안의 열기는 그나마

성큼 다가온 겨울의 추위를 견뎌 낼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나에겐 사치였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자기 멸종해버린 기름...

그와 함께 더 이상 관사의 바닥에서는 열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보일러 없이 잠을 청한 첫 새벽

나는 오그라질데로 오그라든 나의 육신을 발견했다.

비참한 육신을 가누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지만,

잠을 청하기에는 방안의 온도는 너무 춥다.

하지만 자야했다.

나의 육신이 그나마 의지할 곳은 이 이불밖에 없었다.

손톱이 이불을 뚫을정도로 꼭 붙잡고 밤을 지샜다.



아침이 되었다.

지난 새벽 생존의 몸부림은 꿈결이었을까?

차디찬 방바닥을 손으로 어루만지었다.

역시나 예전의 온기는 온데간데 없다.

오로지 얼음장 같은 바닥만이 지난 새벽의 추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도 시베리아 벌판 같은 방바닥에서 혹시 숨어있을지 모른 마지막 온기를 찾아 

나의 손바닥은 이리저리 훑기 시작했다.

으헸~! 온기다.

방바닥의 희미한 온기는 사람의 형체를 띠고 있었다.

두꺼운 이불을 뚫고 나의 체온은 어느새 방바닥까지 스며들어 있었다.

지난 밤의 살기 위한 한 인간의 애처로운 몸부림의 흔적이 여실이 깃들어 있었다.

삶에 대한 집착인가? 

자연에 대한 투쟁인가?

어쨌든 그의 삶의 열정에 존경의 뜻을 표하고 싶지만,

그에 앞서 슬픈 마음은 애써 지울수가 없다.

저 넓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애처롭다는 듯 쓴 웃음을 지어낸다.

 

그래도 학교에 있을 때에는 그나마 추위를 잊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이 오듯 그렇게 해는 지고,  저녁이 되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거실에 같이 앉은 형님과 나.

신성한 노동 후에 달콤한 식사를 하려던 우리에게
 
추위는 잠시도
그런 여유로움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의 궁뎅이를 맞이하는 건 냉랭한 한기 뿐이었다.

이때 나는 이 한기를 퇴치할 묘책이 생각났다.


사과를 박스로 사가지고 먹었는데,

그 박스에는 사과가 서로 부딪히지 않게 하기 위해 스티로폼 고정틀이 있었다.

그 고정틀을 방석삼아 깔고 먹었다.

그 고정틀의 뛰어난 보온효과에 나도 놀라고 형님도 놀랐다.

감탄과 극찬은 아끼지 않았다.


지난 대학시절 술먹고 뻗어도

입돌아가지 않도록 지켜준 강의실 바닥의 스티로폼 돗자리와 같은 효과가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나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걸 깔고 자면, 훨씬 따뜻할 것 같다."

형님은 두말도 안하고

이불 밑에 사과 고정틀 2장을 넣더라...

평소 폼생폼사 쿨한 형님이었는데...

새삼 추위의 위대함을 느낀다.

 

 


아... 이렇게 일기를 쓰는 동안에도 밤은 온다.

이제는 밤이 오는 게 두렵다.

새벽은 더 더욱 나를 떨게 만든다.

그런 가혹한 새벽녘을 지나 아침에 눈을 뜨면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지난 밤의 추위를 무사히 넘기고 생명줄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난 얼마나 더 버틸수 있을까..?

 

- 내가 읽어도 불쌍한 일기 끝 -



  저희 섬에서 기름이 떨어지면, 본섬에 가서 드럼통(200Kg)을 배에 싣고 와서 그걸 다시 리어카에 실어 경사 지옥같은 경사길과 한바탕 한다음에 일일이 손으로 짜서 기름보일러에 넣어야 하는 수요자 전과정 참여(기름 구매->기름 이동[배, 리어카]->기름 투입[기계x, 쭉쭉이O 난로에 기름넣을 때 쓰는 것]) 전수동 시스템을 체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기름을 넣어 놓지 않으면 이런 참사를 겪기도 하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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