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롭고 고상한 허세남
※ 육지에서 3시간 거리, 섬에는 작은 슈퍼하나 없고, 오직 학교 뿐인 섬마을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툭. 툭. 투두둑
봄비가 내린다.
최근에 내렸던 비가 언제였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정말 반가운 손님이다.
창문을 통해서 보슬비 내리는 봄의 들판을 본다.
차가운 도시남자의 마음에도 훈훈한 봄바람의 기운이 감돈다.
어느새 나는 감수성 예민한 시인.
정취에 취해 따뜻한 마끼아또 한잔이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카페인 생각에 참기로 했다.
절대로 ( ) 이러는 것이 아니다.
‘아참.. 아직 일어나서 먹은 것이 하나도 없지...’
순간 매콤한 신라면 한 뚝배기가 떠올랐다. (한뚝배기 하실래예? 국물이 억수록 얼큰하네)
하지만 금세 손사래 치며 라면생각을 지워버렸다.
라면이 얼마나 몸에 안 좋은데...
절대로 ( ) 이러는 것이 아니다.
밥에 김치 하나 얹어서 대충 허기를 채웠다.
평소 축축하고 습한 화장실에서
세면을 한다는 것에 불만이었다.
한가로운 휴일만큼은
탁 트인 야외에서 세면을 하고 싶었다.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방수 100% 고급 비닐 재질의 옷을 걸쳐 입고,
고급스러운 피아노 블랙 바탕에
고고한 백의민족의 기상이 엿보이는 3개의 하얀 선이 가로지르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다.
나의 세면대 구조는
최첨단 자동 설비에 친환경적으로 설계되어 있다.
맑은 날 태양열 발전을 하듯이
비오는 날 나의 세면대는 자동으로 세안 준비를 해준다.
물은 물론 100% 자연산 생수이다.
역시나 오늘도 자연적으로 물이 채워져 있었다.
개운하게 씻고 나서 물을 비워 버리고
그 자리에 두었다.
뒷사람을 위해서 물을 채우지는 않는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전자동으로 물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시간일 뿐...
양치질을 할까 했지만
최고급 미백과 충치예방 잇몸 호보 다기능 치약이 아니면
안 쓰는 깐깐한 남자라서 생략하기로 했다.
절대로 ( ) 이러는 것이 아니다.
헙...
단전에서 짜리한 통증이 온다.
이내 뒷 트름이 연달아 나온다.
평소 같았으면 이내 해우소로 달려가 근심을 해결했겠지만,
지금 같은 긴급상황에서는
이런 사소한 문제도 중요한 안건이 되고,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처
배출여부를 꼼꼼히 검토하고 따져봐야 한다.
그리고 결국은 한번은 참고 다음 기회에 가는 걸로 결정이 났다.
절대로 ( ) 이러는 것이 아니다.
배고픔의 고통에서 벗어난 덕택에
싱크대에는 설거지라는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이것도 문제될 것이 없다.
하늘의 축복이라고 까지 불리는
양동이 시스템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시스템도 위의 세안시스템과 동일한 방식이다.
야외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설거지를 했다.
절대로 ( ) 이러는 것이 아니다.
샤워나 빨레는
지난 기간 동안 쌓인 나의 몸에 깃든
행운을 내쫓는 야만적인 행위라서 일체 금지다.
또한 샤워나 빨레는 매우 시치스러운 행동이고
미풍양속을 어지럽히는 아주 몰상식한 행동이다.
절대로 ( ) 이러는 것이 아니다.
나는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것만 찾는 깐깐한 된장남.
나는 21세기 친환경 녹색성장의 대표주자. 이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현대인.
......
......
이쯤 되면 ( ) 안에 무엇이 들어갈 지 아시겠죠?
편의 시설 하나 없이 살아도 보고
의료시설 하나 없이 살아도 보고
인터넷 없이 살아도 보고
전기없이도 살아도 보고
한 달간 밖에 안 나가 보기도 하고
며칠 밥이 떨어져 굶어 보기도 했지만
진짜 물 없이는 못 살겠다. 엉엉 ㅠㅠㅠㅠㅠㅠ
-.- 요즘 거울 안본다.
꼬질꼬질한 나,
나조차보 보기 싫다.
작품해설
투명하게 속이 비치는 방수 100% 고급 비닐 재질의 옷 : 비옷
고급스러운 피아노 블랙 바탕에
고고한 백의민족의 기상이 엿보이는 3개의 하얀 선이 가로지르는 신발 : 삼선 쓰레빠
2009년 한해는 정말 가뭄이 심했던 것 같네요.
평소에 너무 물이 없어서 비오는 날에 비옷 입고, 세수하고, 설거지에 쌀까지 씻었네요.ㅠㅠ
당장에 물이 없으니깐 삶의 제약이 어마어마~~어마하더라구요.
당장에 마실 식수부터 부족하구요. 용변 뒷처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샤워, 빨레 이것은 정말 사치입니다.
물부족 국가인 우리나라. 정말 물 아껴써야 돼요.
정말 물을 대신 할 수 있는건 물 밖에 없습니다.
[출처 : 공익광고 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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