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섬탐험

쌀 구걸하는 선생님

래뽀 2010. 1. 13. 23:26

 선생님들은 방학 중에도 며칠씩 학교에 출근을 합니다. 출근해서는 방학 중에 온 공문처리, 학교 관리 등을 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작년 여름방학 때 근무를 하면서 겪었던 특별한 사연 입니다.^^



 인간적으로 방학 중에는 늦잠을 즐길 권리가 있는 것 아니냐! 간만에 새벽같이 일어나니 온몸이 비명을 지른다. 물론 나는 내 몸이 외치는 비명에 백번 공감한다. 하지만 교사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방학 중 근무를 위해, 섬으로 가야했다.

 덥다고 곡소리가 절로 나는 지옥 같은 여름철에 보통 사람들은 내가 있는 곳에 오고 싶어 야단법석이지만, 한 달에 배를 10번 정도 타고, 창문 열면 망망대해가 보이고, 갯지렁이, 갯강구에게 대화신청을 하는 필자에게 바다는 피서지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메케한 자동차 매연이 뭉게뭉게, 소음에 귀가 얼얼, 목은 칼칼, 눈은 따끔따끔, 사람들은 바글바글해야지만, ‘아~ 살 것 같다!’ 라는 소리가 나오는 특이체질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고 툴툴 거리는 육신을 먹을 것으로 달래며, 여객선터미널로 향했다. 성수기 때라서 관광객들이 엄청나다. 창문도 안 열어주는 컨테이너 박스 같은 배에 사람까지 바글거리니 현기증이 절로난다. 이때는 자는 것이 최고다. 2년간 이 배를 타다보니 집보다 배에서 잠이 더 잘 온다.

 달콤한 잠에서 깨어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본섬에 도착. 필자가 근무하는 학교는 여기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30분을 더 들어가야 한다. 앗, 그런데 1년 반 동안 어선(학부모님 배)만 타고 다녔는데, 드디어 우리 섬에도 정규선이 생겼고, 처음으로 이 배를 타게 되었다.  (하루에 딱 한번 운행, 그러나 신안군에서 지원이 부족해서 몇 번 운행안하고 지금은 운행중지 됌;;;ㅠ)

 어선에 비하면 배가 엄청 크고 깨끗하다. 이곳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화장실이다. 이 화장실은 녹색성장 친환경정책에 걸맞게 디자인 되어있다.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따끈한 생명은 바다로 바로 방생 처리된다. 잡았던 물고기를 바다에 풀어준 듯 잽싸게 시야에서 사라진다. 또한 출렁이는 파도는 깔끔한 뒤처리를 해준다. 다만 완급 조절이 아쉽다.
혹시 비데를 만든 사람은 아마 배를 타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렇게 헛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정규선은 필자가 근무하는 섬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이들은 안본지 1주일 밖에 안됐는데, 국적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새까맣게 타있다. 하루에 7시간씩 매일 수영을 한단다. 박태환도 울고 갈 연습량이다...; 나도 미리 준비해온 물놀이 옷으로 갈아입고, 수영도 하고 물장구도 쳤다.

 헌데 물이 좀 춥다. 어느새 내몸은 따끈한 모래사장의 온기에 홀려 모래 위에 벌러덩 누웠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나의 몸뚱이를 파묻는다. 뼈를 보면, 묻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의 본능인 것인가?(필자는 마른편이다.)
 올해 들어서 2번째 모래찜질이다. 직원여행가서도 형님들이 파묻어줬는데,,, 그때도 형님들은 나를 푸짐하게도 묻어 주셨다.
그리고 단전 밑에 길다란 비석 하나 세워 주셨다.
어찌나 민망하던지,,,, 작은 비석이 아닌 걸로 위안을 삼았다.

 몇 시간을 놀아도 아이들은 지치지 않았고, 내가 피곤해서 혼자 슬쩍 관사로 올라왔다. 샤워를 하고 나니, 이제 뱃속에서 밥 먹을 때가 넘었다고 통증이 온다. 밥을 지으려고 쌀을 씻는데, 검은 것이 둥실 떠오른다.

먼지인가 해서 그냥 버렸는데, 하나 둘 자꾸 떠오른다.

두 눈을 부릅 치켜뜨니 웬걸.....

내 머리맡에서 언제나 내 귀를 간질이던 녀석들....

개미들이다.

ㅠㅠ

 

방학 동안에 방치해 놓고 간 쌀포대 전체가 개미테러를 당해버렸다.

쌀밥을 포기하고, 라면을 삶기로 했다.

오 지쟈스... 가스가 안 나온다.

급우울해진다.

무릎에 힘이 풀리며 OTL자세를 취했다.

그래도 죽지는 말라는 것인가

커피포트가 있어서 라면을 뽀그리해 먹었다.

하지만 배가 차지 않는다. 오히려 속은 쓰리고 밥이 더 먹고 싶었다.

 

 

그래서 부들거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잡고,

제자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이다."

"네, 선생님"

"밤에 학교와, 선생님이 전설의 고향 보여 줄게."

"네^^."

"잠깐..."

"왜요?"

".... 올때 쌀 한주먹만 가져올래? 선생님 너무 배가 고파 ㅠ"

그날 결국 나란 교사는 학생한테 쌀 구걸을 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맛있게 쌀밥을 먹고, 내가 사온 쭈쭈바를 아이들과 나누어 먹으며, 전설의 고향을 보았다. 그리고 무서워서 집에 못 간다는 2학년 동혁이 손을 잡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날 밤의 하늘의 별들은 킥킥 웃어댔고, 초승달은 혀를 끌끌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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