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섬탐험

섬마을 선생님에게 2만원을 꼭 쥐어주신 아주머니

래뽀 2010. 1. 5. 19:06

서해남부 먼 바다 어느 작은 섬에도 학교는 있습니다.

그곳에선 오늘도 대한의 새싹들은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우리학교 고학년들을 데리고 워드프로세서 필기시험을 보러간 이야기이다. 정규수업이 끝나고 틈틈이 준비한 워드프로세서. 마침내 필기시험을 보러가기로 했다. 하지만 섬에 살고 있는 관계로 목포에 나가서 시험을 봐야만 했다. 그리고 학기 중인지라 일요일 날 시험 볼 수 있는 정기 검정을 응시했다. 헌데 토요일 날 주의보가 예상되어서 하루 빠른 금요일 오후에 목포로 나오게 되었다. 전부터 예쁜 우리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도 사주고 싶어서 시내에 있는 미스터 피자로 향했다. ‘대변과 한턱은 한번 쏠 때 시원하고 푸짐하게!’라는 내 개똥철학에서 비롯된 일이다.

 피자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초등학생 다섯에 어른 하나가 들어오니 신선하다고 느끼는 시선이 우리 일행에 꽂혔다. 갓 잡아 올려 촌티가 펄덕이는 싱싱한 촌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나름 잘 차려 입었지만, 등 뒤에는 2박3일할 보따리 하나씩 들고 있어서 결국 촌티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헌데 낯선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어떻게 보일까?
  
 1. 여름성경학교에서 나온 청년과 학생?
 2. 삼촌과 조카?
 3. 앵벌이 포주와 앵벌이?
 4. 초등선생님과 초등학생?
 
 네 번째가 가장 설득력 없어 보여서 왠지 서글퍼진다.
 
 하지만 겉모습은 상관없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도시 문명을 대표하는 피자집에서 태연하게 주문을 하고, 집에서 된장국에 밥한 그릇 먹듯이 자연스럽게 먹으면 이내 사람들도 신기하게 보지 않으리... 하지만 아이들의 돌발행동에 대비해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한편 아이들은 저번 도시문명체험 학습 때 피자집 경험을 해서 샐러드 바도 잘 푸고 칼질도 잘해서 잘 먹는다. 역시 인간은 배워야 한다. 약간 소란스럽지만, 매끄러운 주문과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피자집 행동에 우리 일행은 교양 있어 보인다고 내 딴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들이 샐러드 바를 떠 올 때, 내 취향에 안 맞게 떠오길래 내가 직접 나서서 떠왔다. 야물딱지게 알찬 구성으로 샐러드를 채워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내 눈은 티비를 보고, 손으로는 애들한테 장난을 시도하다가 그..... 그만ㅠㅠㅠㅠㅠ 내 몸은 옆에 빈 테이블에 부딪혔고, 그릇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져서 깨져 버렸다. ㅠㅠ 어찌나 민망하던지ㅠㅠ 지금 생각해도 손발이 오글거린다.
 우리 반 애기가 "선생님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 하면서 나의 어께를 두드려주며 위로를 해주었다. ㅠ 흐규규 완전  창피.. 나는 먹는 내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하기 싫은 지옥같은 식사를 마치고 카드로 결제하고 싸인할 때, 내 싸인 대신 '그릇 깨서 죄송해요 ㅠ' 라고 쓰고 나왔다.
 
 저녁을 빵빵하게 먹고 집에 들렸다가 소화시킬 겸, 아시킴 하나씩 물고, 집근처 산책로에 갔다. 여름철이라서 산책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산책로 주변에는 운동기구도 있고, 놀이터도 있다. 우리학교 운동장에 놀이기구는 철봉과 미끄럼틀 단 두 개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아이들은 산책로 놀이터에 있는 지구의(뺑뺑이)랑 그네에 혼을 빼앗겨 버렸다. 애들이 그것들을 타고 노는 동안에 나는 그냥 있기도 그래서 미취학 아동이 선호하는 1순위 놀이기구! '스프링 달린 말' 이라해야하나?  어쨌든 자동차 모양에 밑에 스프링 달린 것을 타고 있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인터넷에서 떠도는 사진하나 구해옴.]

대충 저런 것...
그 스프링 자동차 위에서 질주본능을 과시하고 있는 나에게 지나가시는 어르신께서 나이 값하라고 뜨끔한 일침을 가하셨다.
 
"아따~ 붕붕이 탔다고 신났네 신났어~."
 
ㅠㅠ

나란 교사.. 참 수준 떨어지는 것 같다.
 
 
그 다음 토요일,  
내가 섬에 있는 동안, 나의 친구라는 것들은 이미 다 봐 버린 영화.
같이 보러가자고 10명에게 물어봤는데, 10명 모두에게 퇴짜 맞은 영화.
그토록 보고 싶었던 트랜스포머2를 아이들과 보러 갔다.
  
낮에 먹었던 햄버거 세트메뉴보다 비싼 초등학생의 영화값 ㅠ.
여튼 또 줄줄이 사탕 5개 꾀고 상영관에 입장하니, 대뜸 뒤에 아주머니께서 하시는 말씀
 
"교회에서 왔어요?"
 
킁... ㅋ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동안에 옆에서 아이들이 “섬에서 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대뜸 아주머니께서 우리를 위해 음료수 6개를 그냥 주셨다. 고맙다고 10번 말하고 감사히 받았다. 음료수 맛있게 먹고 있는데, 나를 또 부르셨다. 
그리고 대뜸 2만원을 나에게 주시면서, "오늘 길가다가 돈을 주웠는데, 이렇게 전달하라고 주은 돈인가 봐, 애들이랑 맛있는 것 사먹어" 라고 말씀하셨다.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 극구 사양했다. 저희는 어머님이 생각하시는 만큼 궁곤하지 않아요. 보세요. 어머님이 보시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희들 옷차림도 비루하지 않자나요. ㅠㅠ 왜 주시는지 ㅠㅠ
 상영관 안에서 10분간 실랑이를 하다가 아주머니께서 창피하다고 받으라고 하시 길래.
결국 받았다. 나는 염치없이 주신 음료수와 돈을 감사히 받고 재밌게 영화를 보고 나왔다. 그리고 주신 돈으로 인라인스케이트를 재미있게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다음날 아이들과 도시나들이 나온 궁극적 목적인 워드시험을 보고 섬으로 돌아왔다. 2박 3일간 아이들과 다니느라 나의 지갑과 체력은 궁핍해졌지만, 세상 무엇과도 바꾸기 싫은 좋은 추억도 얻게 되었다. 

 돈받는 제가 기분 나빠할까봐 주은돈이라고 말씀하시며 저에게 선뜻 2만원을 쥐어주신 천사같은 아주머니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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