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생각

[짧은 생각]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 안녕

래뽀 2009. 11. 18. 19:24

우리학교는 1~6학년,

본교 분교 학생 모두 다 합쳐도 200명 정도 밖에 안되는 작은 학교다.

그래서 졸업앨범이라는 것도 없다.

대신 학교 문집이 그 졸업앨범 역할을 하고 있다.  

요 며칠전부터 초큼씩 문집을 해오던 와중, 오늘 드디어 결단을 내기로 결심. 

애들 작품 퇴고하고, 내가 쓴 글 편집하고, 1년간 찍어온 사진들은 전부 스캔하면서

문집에 싣을 사진들을 찾아 보았다.

언제 이런 걸 찍었을까? 싶을 정도로 새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던 사진들이 튀어나왔다.

사진은 지난 시절의 아름다움을 홀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가

일상의 여유를 쪼개내어 찾아가면 나에게 정겹고 진한 감동과 추억을 선사한다.

 어쨌든 편집도 하고 사진도 찾고 하다보니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진도는 정석 공통수학의 새까매진 30p마냥 진전이 없었다.

 앜.... 안돼

 "내 일생을 다 바쳐도 이루어 낼 수 없는 업무야~."

 하며 좌절하고 있을때, 평소 나의 개똥철학이 떠올랐다.

 

 

키 큰 남자를 찾는 여자분, 1cm만 낮춰도 새로운 세상이 열려요.

학점의 노예들, 1학점만 낮춰도 새로운 세상이 열려요.

다이어트하는 분들, 당신이 아쉬워하는 마지막 한숟갈만 내려놓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려요.  

기대치 조금만 낮추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

우린 모두가 행복한 거에요. 

어쨌든 기대치와 완성도를 조금 낮춰서 문집 완료.

오늘은 문집에 실은  나의 이야기를 올려보겠어요~.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 안녕

 엊그제 우리가 만난 것 같았는데, 벌써 헤어질 날을 앞두고 마지막 편지를 쓰는구나. 이별을 슬퍼하며, 서로의 안녕을 빌 수도 있겠지만, 선생님은 그러고 싶지 않구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에 당당하게 받아들이려고 해. 매일 티격태격하며 보낸 하루하루를 생각해 보니 웃음이 절로 나는구나. 한명이 감기가 걸리면, 모두가 다 감기가 걸려서 교실이 병실이 되고, 너희들이랑 웃고 떠들면 이 교실이 집안의 거실처럼 친근해졌어.
 올해는 동○이가 졸업하고, 내년에는 너희 5학년들이 졸업해서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너희의 꿈과 미래를 펼칠 것이야. 너희는 분명 부지런하고 현명한 아이들이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구나.
 초등학교 시절도 중요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또한 매우 중요해. 초등학교 때에는 인생의 그릇을 재단하는 시기라면, 중․고등학교 때에는 그 그릇에 너희의 땀과 노력, 인내를 담아내는 시절이지. 이 시절에 많은 걸 담지 못 한 채 어른이 된다면, 텅텅 빈 그릇처럼 별 볼일 없는 어른이 되겠지?
 오늘의 글을 쓰기위해  너희와 생활을 회상해보니깐 우리 반은 꼭 오즈의 마법사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혜○이는 매사에 적극적이면서 씩씩한 도로시, 상○이는 어려운 문제도 지혜롭게 해결하는 양철 나무꾼, 동○이는 다재다능하지만 겁이 많은 사자, 승○이는 사교성 좋고 호기심 많은 허수아비.
 선생님 표현이 맞니? 선생님이 단지 재밌자고 너희를 이렇게 비유한 것은 아니야. 선생님이 국어시간에 항상 강조하는 말.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라!” 기억나지? 사실 이렇게 비유한 속뜻이 있어. 오즈의 마법사 친구들도 각자 자기의 약점을 보완해 더욱 멋진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잖아? 너희들도 앞으로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면서 반드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야해. 마지막 이별을 말하는 이 시간에도 잔소리를 해대는 선생님이 미울까? 선생님은 너희의 안녕보다는 성장을 빌고 싶단다. 이건 선생님의 소원이자 부탁이고, 너희들이 선생님을 위한 보답이기도 하지. 각자 이 말들을 잘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혜○이는 승부욕을 잘 조절했으면 좋겠어. 상○이는 장도의 넓은 바다처럼 깊고 넓은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 승○이는 너의 호기심에 끌려 많은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 동○이는 너의 재능을 수줍게 숨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어.
 여기까지 선생님의 소원이었어. 선생님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분명 미래의 너희 모습은 위풍당당하고 매력적인 사림이 되어 있을 것이야. 그것을 상상하니 벌써 설레고 기쁘구나. 우리 반드시 멋진 사람이 되어서 다시 만나자. 안녕.


 추천에는 로그인이 필요하지 않아요.
 
알라딘 창작 블로그 동시 연재중